책소개
프랑스의 극작가 마리보의 희극 두 편을 한 권에 담았다. <노예들의 섬>(1725)은 유토피아를 다룬 마리보의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다. <노예들의 섬>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불의의 사고로 낯선 섬에 도착해 신분의 역전을 경험한다. 난파한 배에서 생존한 두 명의 주인과 두 명의 하인들이 파도에 떠밀려 도착한 섬은 100년 전에 그리스 노예들이 주인들에게 반기를 들고 자유를 획득해 세운 노예들의 공화국이다. 이곳에 잘못 들어온 타지의 주인들은 노예로 신분이 전락하고, 노예 출신의 난민은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일종의 노예들의 천국이자 주인들의 지옥이다. 아테네에서 지배층으로 행세했던 이피크라트와 외프로진은 노예로 전락한 자신들의 처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졸지에 자유와 권력을 얻게 된 하인들의 주인 놀이는 마리보 특유의 ‘극중극’을 만들어낸다. 경박한 황금만능주의와 허영심으로 가득 찬 지배 계층의 권위 의식을 낱낱이 고발하는 클레앙티스의 웅변은, 이 작품에 역할 바꾸기를 통한 유희 이상의 사회의식을 불어넣고 있다.
마리보의 마지막 극작인 <순진한 배우들>(1757)은 비교적 짧은 단막극임에도 불구하고 ‘극중극’ 방식을 도입해서 연극의 묘미와 속성을 압축해 보여준 수작이다. 이 작품에는 하인들의 연극을 비롯해서 이들에게 공연을 주문한 주인들이 펼치는 연극 등 두 개의 극중극이 존재한다. 하인 메를랭이 연출하는 즉흥극은 허구와 실제의 미묘한 경계를 넘나들며 마리보 특유의 심리 묘사에 성공한다.
200자평
프랑스의 극작가 마리보의 희극 두 편을 한 권에 담았다. 네 젊은이가 파도에 떠밀려 낯선 섬에 도착하면서 하인이 주인 놀이를 하게 되는 <노예들의 섬>, 허구와 실제를 넘나들며 연기하는 두 개의 즉흥극 <순진한 배우들>. 마리보 특유의 역할 바꿈과 극중극 기법, 세밀한 심리 묘사를 즐길 수 있다.
지은이
마리보는 보마르셰(Beaumarchais)와 함께 18세기 희극 작가를 대표한다.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그가 남긴 작품에 비해 훨씬 적다. 1688년 2월 4일 파리에서 태어난 마리보는 11세가 되는 해에 화폐주조국의 책임자로 발령이 난 부친을 따라 오베르뉴 지방의 리옴을 거쳐 리모주에 정착하여 소년기를 보낸다. 오라토리오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우고 고대 작가들을 비롯하여 르네상스 시대와 17세기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접한다. 청년기에 접어든 마리보는 1710년에 파리에 복귀하여 법학 공부를 시작하지만 이내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문학에 입문할 것을 결정한다. 24세가 되는 1712년에 처녀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막극 <신중하고 공정한 아버지>를 리모주에서 공연하지만, 정작 그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극작이 아닌 소설 장르를 통해서다. 1716년 피에르 카를레 드 샹블렝(Pierre Carlet de Chamblain)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집 근처에 있는 길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마리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마리보의 극작 활동은 1720년에 본격화되어 <한니발의 죽음>, <사랑과 진실>, <사랑으로 순화된 아를르캥> 등 무려 세 편의 작품이 같은 해에 발표된다. 마리보가 1720년대에 완성한 15편의 극작 가운데 무려 11편을 이탈리아 극단에서 공연한 것으로 보아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마리보는 극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중에도 <프랑스 관객>이라는 신문을 창간하는가 하면 <마리안의 삶>(1731∼1741), <출세한 농부>(1735) 같은 작품을 발표하여 소설의 형식과 미학을 혁신했다. 마리보는 1742년,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문필가로 평가되는 볼테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한림원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한림원 회원이 된 이후 마리보의 작품 활동은 현저하게 감소하여 1763년 파리에서 사망할 당시 그는 동시대 문단에서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 연극계와 평론계의 인사들은 마리보의 연극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18세기의 몰리에르로 추앙받던 보마르셰를 제치고 마리보는 이제 몰리에르와 비교되는 작가로 평가가 역전되었다.
옮긴이
이경의는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나 부평에서 초·중·고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서강대학교에서는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며 연극 장르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파리 4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프랑스 고전극의 연구를 시작하여 몰리에르 연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과정과 박사준비과정을 이수한 데 이어 1994년 <17세기 프랑스 희극에 등장하는 바르봉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프랑스 문학사를 비롯하여 프랑스 연극과 영화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차례
노예들의 섬
순진한 배우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63쪽, <노예들의 섬> 중에서
신분의 차이는 신이 우리에게 내린 시험에 불과합니다. (…) 여러분들에게 슬픔의 시간이 가고 이제 기쁨이 찾아왔으니 그 시간을 유익하게 즐기시기 바랍니다.